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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월 5주차 일기



이번 주는 별 이슈가 없다.
왜냐면 라섹을 해서 집에 칩거했기 때문.

이런 황금 연휴에 여행은 커녕 눈도 못뜬 채 집에 굴러다니는 게 꽤나 아까웠지만..
그래도 이 김에 푹 쉬어줄 기회구나 싶다.

라섹은 회복이 오래 걸린다길래 이번에 큰 맘 먹고 연차를 쏟아부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러고 다음 주에 부산 여행을 간다.
오로지 라섹만을 위한 연차는 아니지만 핑계는 좋았던 셈.

마냥 핑계는 아닌게, 오늘로써 딱 일주일 째인데 아직도 눈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한 0.7-0.9 정도?
양쪽의 회복 시력 속도도 다른 것 같다.
뭔가(주로 스마트폰.. 태블릿.. tv)를 오래 보고 있으면 눈이 금방 무거워진다. 이 상태로 바로 컴퓨터를 보며 일을 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냥 하기가 싫음)
무튼 이렇게 눈이 급격히 피로해질 땐, 할 게 없어서 그냥 잠을 잔다.
신생아처럼 잤더니 몸과 마음이 후덕해지는 중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에 걸맞는 삶 실천중.


라섹 후기 3줄 요약

1. 라섹 전 일주일 : 이 기간 동안 안경을 쓰고 다녀야 했는데 하필 이때 온갖 회사 행사가 몰빵된 주간이었고, 행사에서 마주친 회사 지인들이 너 왜 안경을..? 이란 표정으로 쳐다봐서 해명하고 다녔다.

주로 대화 흐름은 아래와 같음
?? : (설명을 요하는 표정 혹은) 왜 안경 꼈어?
나 : 아 저 라섹해서요 !
?? : 아 라섹을 한거야?
나 : 아녀 담주에 해요
?? : 근데 왜 지금 안경을?
나 : 그게 라섹 전에는 렌즈를 못껴서 안경을 껴야 하는데요. 그 이유가 렌즈를 끼면 각막이 눌려서... 어쩌구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다니기 바빴다. 왜인지 호들갑을 떨어버린 기분
+행사내내 박사님 안경끼고 찍은 못난이 사진들이 대거 늘어나버림.

(아 3줄 요약이 아니게 돼버렸다)

2. 라섹 수술 받는 시점 : 수술실에 누워서 수술 준비를 할 때 인생 최대치의 공포를 느꼈다. 그동안 전신마취, 부분마취 경험 유 + 쌍수로 얼굴에 칼 대 본 경험 있음. 꽤 다양한 이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눈이라는 기관은 확실히 달랐다. 누워서 수술을 준비하며 눈을 감지 못하게 하는 기구를 장착할 때까지 정말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본능적인 공포감이 솟구쳤다.
시야를 가득 채운, 웅장하게 날 내려다보는 커다란 레이저 조사기계가 저예산 공포영화에서 구현한 우주선 같아서 더 기괴스러웠다.
'이건 그냥 수술이고 최소 5분에서 10분이면 끝난다.. 이거 별 거 아니고 수 만 명이 거쳐갔다.. ' 속으로 현실적인 주문을 계속 외면서 간신히 버틴 것 같다.
마취를 해서 통증은 전혀 없었고 눈에 뭔가 살짝 닿는 느낌이 간간히 났다. 아니 보였다. 느껴져서 느껴진다기 보다는 보여서 닿는다는 걸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무튼 통증보다는 눈에 뭔가를 하는데 감을 수 없다는 본능적인 저항감에서 오는 공포?가 컸던 것 같다. 더 무서운 건 눈은 두 짝이라는 점. 불쾌하고 기괴한 거부감을 또 한 번 더 경험해야 한다..
끝나고 나와서 엄마한테는 아 라섹 별 거 아니네~ 하고 센 척을 했다. 다 끝나고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통증도 없긴 했다.

3. 라섹 수술 후 : 100명 중에 2명?은 통증이 없다던데 그런 운 좋은 사람이 내가 될리 없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난 눈이 아프지 않았다..!
사실 첫 이틀은 통증 느낄 새가 없이 눈물이 앞을 가려서 눈도 뜰 수 없었다. 그리고 밝은 빛을 보면 눈이 너무 부셔서 뱀파이어처럼 빛을 피해다니며 암막 커튼 쳐진 내 방 안에서 머물렀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냥 눈감고 앉아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들었다. (주 컨텐츠 : 라섹수술의 고전인 컬투쇼 + 침착맨 월드컵 + 용감한형사들 시즌3 몰아보기)
이유없이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는데, 눈물이 나니까 덩달아 코도 훌쩍거려서 눈물콧물을 함께 닦았다. 그러다 컨디션 좋으면 얼굴 닦아가며 가끔 폰도 좀 하고 태블릿도 들여다봤다.
(다음주에 자취방 계약서 쓰기로 되어 있어서 갑자기 등기부등본 확인해야겠다 싶어서, 이 와중에 등기부등본도 결제해서 뜯어봄. 이게 수술 다음날의 일이다..)
와 난 라섹 두 번도 하겠는데 싶어서 연휴에 소파에 안경끼고 앉아서 티비보는 동생한테 라섹 꼭 하라며 퉁퉁 부은 눈으로 라섹 찬양을 했다. 근데 진짜 너무 할 만하다.
글쓰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역시 연차 너무 오바해서 썼나 싶어서 약간 후회되는 와중에, 다음주에 부산 여행이라도 가서 다행이다.

+) 나중에 생각해보니, 눈물 흘리고 시린 게 다 통증이었나 싶기도;;

이렇게 나의 연차 3일을 녹인 연휴가 일주일 지나갔다.
다음주에도 연차를 3일 썼기 때문에 (신입이기에 가능한 눈치 밥말아먹은 연쇄 연차)
10월10일에 출근이다.
일주일을 뒹굴거렸는데, 아직도 일주일 이상 더 쉰다니 진짜 고등학생 방학이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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