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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리뷰어/📽요즘 영화

[영화] '나를 찾아줘' 감상기


벌써 10년 전 영화라니 시간 참 빠르다.
대충 어떤 줄거리인지는 파악하고 있었기에 대충 아는 내용 봐야하나 싶어서 계속 미루던 중
새해 첫 날 영화 고르기가 귀찮아서 넷플릭스의 추천을 받아들여 간만에 각잡고 봤다.

보고나니 참 진빠지는 영화.
쉬자고 본 영화인데 기운을 쏙 빼갔다.

주인공 에이미. 그야말로 완벽한 여자.
새하얗고 백옥같은 피부에 완벽하게 세팅된 금발, 값비싼 뉴욕에 거주할 만큼 꽤나 재력 있는 집안(사실 이 부를 쌓는 데에는 에이미의 공도 있었지만)에
하버드를 졸업한 명석한 두뇌까지. 인생에 굴곡이라곤 없었을 것 같은,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여성이다.
(막판엔 너무 완벽해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런 녀성..)

에이미의 부모님은 에이미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책을 시리즈로 내며 엄청난 히트를 쳤고 이를 통해 큰 부를 거머쥐었다.
동화 속 에이미는 밝고 명랑하고 뭐든 잘해내는 다재다능한 아이이다. 현실의 에이미가 완벽한 것처럼.
하지만 현실의 에이미는 동화속 에이미의 결혼을 기념하는 결혼식 행사에서 말한다. '이 에이미는 항상 저를 한 발짝 앞서 있었어요'
완벽한 에이미에게 처음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엿보인 순간이다.
(동화 속 캐릭터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행사를 개최하며 딸에게 언론인터뷰를 종용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에이미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대중에 노출되어
동화속 에이미와 경쟁해야 했던 현실의 에이미.
부모님의 성공을 위해 때로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감수해야 했던 어린 아이.
이것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던 걸까.

대중에게 노출되어 가상의 에이미와 비교당해야 했던 성장기.
동화속 에이미처럼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던 사이코패스 성향.
이 모든 것이 현재의 에이미를 설명해준다.

사이코패스 성향의 대표적인 특징은 지배욕구이다.
타인을 자신의 휘하에 두고 지배적으로 행동하려 하며,
굴복 대상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날 경우 굉장한 분노를 느낀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에이미에게도 이런 면이 두드러진다.

상대에게 애정을 갈구하다가,
상대방이 애정을 거둬들이면 큰 분노를 느끼며
자신만의 응징을 위해 사랑했던 상대에 대한 한 톨의 배려도 없이 그를 (사회적/물리적으로) 파괴하는
자신만의 비상한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습에서 에이미의 사이코패스적 특성이 드러난다.

정체를 숨긴 에이미를 앞에 두고 '죽일 만한 잘못을 했지 않았겠냐'며 에이미를 욕하는 옆집 여자의 술잔에 몰래 가래침을 뱉는다던지,
20여년 간 자신을 사모해왔기에 곤경에 처한 자신을 돕고자 한달음에 달려 온 남자를
자신의 이미지메이킹을 위한 가해자라는 도구로 이용하고 살해해버리기 까지.

거미줄 같이 촘촘한 에이미의 계획에 갇혀 허우적대는 한편, 그녀의 본성을 간파해버린 닉.
(그는 이전부터 에이미에게 꺼림직함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바람 난 닉이 묘사하는 에이미가 얼마나 좋은 이미지였겠느냐만은, 그랬기에 거부감을 느끼고 멀어지려 했던 걸지도. 물론 그렇다해서 닉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해주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는 관객이 기대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해주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에 탄식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살인까지 저지른 에이미의 모든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대체 왜 에이미를 떠나지 않는가?
1) 살인누명은 벗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닉은 전국민에게 '무능하고 폭력적인 데다가, 와이프의 돈을 펑펑 써대는 와중에 제자랑 바람까지 피는 얼굴만 뻔지르한 등신 같은 남편'으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사실이 아니지만, 에이미가 짜놓은 판이 너무 치밀하고 정교해서 경찰과 변호사조차 자신들도 이를 뒤집을 순 없다며 혀를 내둘렀고, 닉 역시 은연 중에 이를 알고 있었다.
2) 에이미는 여전히 모든 경제력을 쥐고 있다. 이미지가 나락 간 닉의 입장에서 에이미를 내친다면 여론은 또다시 그를 등질 것이고 이는 그의 경제활동에도 큰 지장을 줄 것이 자명하다.
3) 대중은 이 엄청난 사건과 (표면적인) 해피엔딩에 열광했으며, 이를 기회 삼아 닉은 자서전 출판, 영화 판권 판매, 운영중인 바의 체인사업까지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여론을 뒤집기 위해 방송에 등장했을 때 닉은 와이프의 돈에 의존해오며 살아왔던 과거에 대해 반성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그녀는 닉 자신에게 너무 완벽하고 과분한 여자였으며, 본인 스스로가 야망도 능력도 없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새 편한 길을 택한 것 같다고.

닉은 그녀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사람인지 알고 있고,
비위를 제대로 맞추지 않을 경우 그 비상한 두뇌로, 세상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을 없애버릴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거미줄에 걸려있었던 그는 더이상 이 안락한 거미줄을 벗어나지 못한다.
거친 세상에 나가 떨어지는 대신, 거미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에게 내어진 부와 안온함을 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